서론 - 불교와 인간 - (1) 깨달음의 공통 기반

 

불교는 부처님의 가르침인 동시에 부처가 되는 길을 제시하는 가르침이다. 부처란 ‘깨달은 자’를 의미한다고 잘 알려져 있다. 이 점에서 불교는 다른 종교와는 현저하게 다른 인본주의적 종교가 된다. 부처는 신 또는 초인적 존재가 아니라, 지상에서 태어나 지상에서 그 육신을 소진하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인간으로 태어나 깨달음을 얻으면 부처가 된다. 이렇게 부처가 된 인간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부처가 되는 길을 가르친 것이 불교이다.그러므로 불교를 이해하고 실천하는 최대의 관건은 바로 그 깨달음이다. 깨달음이 최대의 관건이라면, 이 깨달음을 단번에 쉽게 이해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은 지나친 욕심일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깨달음을 이해하기란 요원한 일이라고 속단하거나 포기할 필요는 없다. 단번에 쉽게 얻지 못할 바에는 포기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것 역시 지나친 욕심의 발로이다.

본격적으로 수행에만 전념하는 경우라면, 깨달음을 얻는 데 반드시 일정한 시간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어떠한 경우든 깨달음의 핵심이 되는 공통의 기반을 건너뛰고서는 불교를 바르게 이해하거나 실천할 수는 없다. 이 기반을 간과하거나 무시하고서 곧장 깨달음 자체로 접근하고자 할 때, 불교의 교리가 명쾌하게 이해되기보다는 더욱 모호해지거나 난해한 것으로 생각되기 쉽다.
불교의 기초 교리는 깨달음의 공통 기반을 설명하는 것이라고 말해도 과언은 아니다. 중급 또는 고급 교리를 별도로 제시한 경우라도 이것들은 그 공통 기반에서 벗어나지는 않고, 연관된 문제를 확장하여 더욱 치밀하게 탐구하여 설명한다.

깨달음의 공통 기반이란 깨달음의 기본 주제를 가리킨다. 기본 주제인 만큼 이것을 이해하는 데도 간명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누구나 느끼듯이 ‘깨달음’이라는 말은 너무 막연하고 추상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깨달음은 이런 것이라고 한정하여 말하기를 주저하는 것은 깨달음이라는 관념의 중압감 때문일 것이다. 깨달음이 불교의 목표로 설정된 탓으로 그 의미를 한정하여 말하기 곤란하다고 느끼는 것이다.그러나 불교에서 깨달음이라는 것이 처음부터 막연한 관념으로 설정되어 있지는 않다. 오히려 그것은 적어도 개념상으로는 명료하게 설정되어 있다. 부처를 ‘깨달은 자’라고 말하는 것은 단어 설명일 뿐이다. 부처가 도달한 깨달음의 상태를 지시할 때, 부처는 ‘고통을 극복한 자’ 혹은 ‘고통을 여읜 자’를 가리킨다. 그렇다면 부처의 깨달음이란 ‘고통이 없는 상태’이며, 부처의 삶이란 ‘고통을 여읜 삶’이다. 이것은 흔히 말하는 행복이나 안락의 불교적 의미이기도 하다.

이제 깨달음의 기본 주제는 고통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고통은 물론 인간의 고통이고, 부처가 되기 이전에 석가모니라는 인간이 겪은 고통이며, 이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가 겪는 고통이다. 불교는 결국 인간의 고통이 왜, 어디서, 어떻게 유래하는지를 관찰하여, 그 고통에서 벗어나 안락하게 사는 길을 제시한다. 이처럼 고통의 실상을 파악하는 데서 불교가 출발했다는 것은, 불교가 인간학으로서 출발했음을 의미한다. 고통의 실상을 파악하는 일은 곧 인간 자체를 이해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이것이 깨달음의 일차적인 대상이며, 이에 대한 이해가 깨달음의 공통 기반이다.

깨달음의 일차적인 대상은 인간이란 어떠한 존재인가 하는 의문으로 설정된다. 그리고 이것은 다시 인간과 필연적으로 공존할 수밖에 없는 세계는 어떻게 존재하는가 하는 의문으로 연장된다. 인간에 대한 이해는 세계에 대한 이해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이것을 하나로 묶으면, 인간은 세계라는 주변 환경과 어떠한 관계로 살아가는가 하는 의문이 된다.

인간과 세계와의 관계는 다시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흔히 사회로 불리는 인간 공동체의 세계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이 사는 터전으로서 자연으로 불리는 환경 세계이다. 흔히 세계라고 말할 때는 이 중에서 후자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이제 깨달음의 주제는 인간, 사회, 세계로 집약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와 세계라는 주제도 인간이라는 주제에 귀속된다. 인간에 대한 이해가 자연스럽게 사회와 세계에 대한 이해로 확장되는 것이다.

불교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은 불교에서 설명하고 가르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의문과 같다. 불교는 인간을 설명하고,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인간의 행동을 가르친다. 이 설명과 가르침에서는 신과 같은 초인적 존재를 내세워 무작정 따르라고 강요하지는 않는다. 누구나 반성을 통해 각성할 수 있는 경험을 내세워 설명하고 가르치는 것이다. 불교가 인간학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불교를 인간학으로 이해하는 시각에서는 먼저 “인간이란 어떠한 존재인가?”라고 묻고, 이에 대한 답을 불교에서 찾는다. 여기서는 초세간적인 세계를 앞세우거나 강조하지 않는다. 이는 세속의 인간에 대한 배려가 불교의 시발이라는 사실을 유념하기 때문이다.

인간학의 불교를 이해하기 위해, 불교의 전체 역사에서 전개된 교리와 사상을 모두 끌어낼 필요는 없다. 인간에 대한 이해를 통해, 불교의 가치를 인식하고 지향하여 일상 생활에서 유용하게 적용할 수 있다면, 이것만으로도 훌륭한 불교 입문이 될 것이다. 이 같은 불교 입문에서는 바람직한 삶의 자세와 실천 원리를 제시하는 데 중요한 교리들을 이해하는 것으로 충분하다.